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본드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채권이 발행되는 나라의 통화와 다른 화폐단위로 발행된 채권이라는 의미로 쓰여 왔습니다. 가령 파운드화를 사용하는 영국의 런던에서 미 달러화로 표시된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원래는 1960년대 이후 런던 등 유럽의 국제금융센터에서 미 달러화 표시채권이 발행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용어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한 유로본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연대보증해서 공동 명의로 발행하는 채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유로본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유로존 국가들이 공동으로 보증하여 채권을 발행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번 유럽 재정위기 해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재정안정기구(EFSF)도 유로 사용국의 보증을 받아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EFSF의 경우에는 각국이 자신이 보증한 한도 내에서만 유한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가령독일의 경우에는 보증한도가 1194억달러로 정해져 있습니다. 보증한도를 넘어서는 자금에 대해서는 다른 보증참여국가가 보증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대신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의무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이번에 논의된 유로본드는 참여국들의 연대보증으로 발행되는 유럽공동채권으로서 참여국 중 어느 한 국가가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나머지 나라들이 대신 상환의무를 부담해야 합니다.스페인이 자국의 국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면 스페인 정부에게만 상환책임이 있지만 유로본드가 발행되었는데 스페인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독일이나프랑스가 대신 물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로본드가 도입된다면 유럽이 재정통합으로 한발짝 더 다가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로본드가 왜 재정위기의 해결방안일까요?
그리스·아일랜드및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주도했던 EFSF는 최대 자금지원 가능 규모가 4400억유로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채무는 총 3조5000억유로에 달합니다. 따라서 유로존 재정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 EFSF는 규모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본드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국가 간의 연대보증이라는 일종의 보험을 통해 남유럽 국가들이 채무를 갚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또 유로본드를 도입하면 부수적으로 유로존 국채시장의 통합을 통해 조달금리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17개의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시장은 각각 분할되어 시장 규모가 작아 신용도가 같더라도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 국채보다 금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규모의 차이로 인한 독일 국채와 미국 국채의 금리차가 평균 연 0.4%포인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유로본드를 발행하면 시장이 커지는 만큼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본드 도입, 가능할까요?
유로본드 도입으로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참여국들이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유로존 안에서는 유로본드를 통한 조달규모를 GDP의 40~60%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 및 재정적자 등 재정건전성 지표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정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국가에는 추가로 금리를 더 내도록 하자는 방안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무사항이 잘 지켜질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도 EU(유럽연합)는 안정성장협약에 따라 과도한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를 각각 GDP의 3% 및 60% 이하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면 벌금 등의 제재조치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독일·프랑스 등 많은 나라들이 이를 위반했는데도 제재조치가 내려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비슷한 약속이 지켜질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다소 희망적인 것은 독일이 헌법을 개정하여 올해부터 정부적자를 2016년까지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도록 의무화했고 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 등도 독일처럼 헌법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정건전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국제적 협약뿐 아니라 자국 헌법에 의무화하여 준수가능성을 높이려는 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한 시도로 보입니다.
유로본드 도입에 걸림돌이 되는 또 다른 난관은 현재의 EU 협약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U 협약은 회원국이 구제금융을 기대하고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국 간에 채무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참여국의 연대보증이 필요한 유로본드를 도입하려면 27개 EU 회원국의 국민투표를 통해 이런 협약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독일과 같은 핵심 국가가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같은 법적·정치적 장애요인 때문에 유로본드는 단기간 내에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상이한 경제여건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분리된 여러 국가 간에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만큼 유럽의 재정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든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기 부진에 따른 세수 감소 전망도 재정위기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ECB가 마지못해 스페인과이탈리아의 국채 매입을 시작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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